손몽주의 인스톨레이션
인스톨레이션에서 미술적 표절이 아닌 것은 개념이다.
이것은 보이는 이미지를 근거하여서 종(踪)이 다름을 말할 수 있다.
개념은 다르지만 유사한 종들은 현대미술에 즐비하다.
그러나 표현의 유사성은 다른 이의 원본을 꾸미지 않고서 행할 때는 도용이다.
인스톨레이션의 도용은 원본의 건축적 구조로한 유사한 이미지를 이룬다.
이것은 도용한 구조의 이미지로 드러난 유사성이다. 그것은 원본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다른 개념을 내세우는 유사한 이미지이다.
그럼에도 원본과는 다른 유사한 이미지의 소비가 존재한다. 이것은 전시를 통한 심사적 권력에 유사성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스톨레이션 개념의 미술적 도용은 예술적 의미의 창출에 두어야 한다.
손몽주의 인스톨레이션은 도용적 이미지를 물리치고서 라캉적 개념의 경계에 선다. 그것은 타자의 욕망을 드러내는 인스톨레이션 이미지의 독특함이다.
이것이 그녀가 찾아가는 라캉의 오브제ɑ이다.
오브제ɑ는 라캉이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에서 제시한 실재를 의미하는 왜상(歪像)적 이미지를 말한다.
이것은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으며, 타자에게 욕망의 원인이자 대상을 의미하는‘objet petit ɑ’이다.
손몽주의 인스톨레이션은 라캉적이다.
그녀는 인스톨레이션에 은폐된 오브제ɑ를 드러내려고 소재를 사용한다.
선재로한 그녀의 소재는 일반적이지만 그것에는 감추어진 타자의 욕망이 있다.
이것은 라캉의 시각이론을 프로세스에 맞추어서 생성된 오브제ɑ이다.
그러나 회화에서의 오브제ɑ는 응시로써 드러나지만 그녀의 인스톨레이션 구조에는 비실재한다.
따라서 그녀는 인스톨레이션에서 오브제ɑ의 자리를 찾고자 한다.
그녀의 인스톨레이션 개념은 라캉의 상상계를 통과한 오브제ɑ의 자리를 찾는 것이다.
라캉의 상상계는 거울에 비친 유아로서의 그녀가 만족하는 것을 거울에 비친 실재의 형상과 다른 형상을 동일한 기표로 동일화하여 보이는 은유로써의 의미를 전달한다.
이것은 라캉의 거울단계로서 유아가 거울에 비친 이미지가 자신이며 타인의 이미지와의 차이를 인식하고 자신의 이미지와 자아를 동일화하는 과정이다.
동일화 과정에서 유아는 신체가 해체되는 환상을 보는데 라캉은 그것을 ‘조각난 신체의 파편’이라고 한다.
유아로서의 손몽주는 그 파편을 보고 고뇌한다.
이것이 그녀의 인스톨레이션에서 보이는 실재의 오브제를 타자의 욕망적 이미지를 응시로서 보이는 또 다른 오브제ɑ로 은유하여서 존재로서 동일화된 의미로 전달하는 개념이다.
그녀의 인스톨레이션 구조는 <No Signal>이다.
이것은 빛의 방향과 그림자의 위치를 정하여서 메워진 공간과 여잉된 공간을 생성한다. 그것은 구분되지않는 벽에서 시작하여서 오브제ɑ를 드러내는 응시점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녀는 벽을 생성하여서 공간에서 주체의 시간을 설정한다. 이것은 타자의 무의식적 욕망의 위치를 정하고 비실재의 주체와 존재의 시간을 고르지않고 마주한다.
여기서 생성된 벽들은 보이는 시간의 여잉된 공간을 만든다. 그 공간에 타자의 욕망을 존재로 드러냄으로서 그녀의 인스톨레이션은 예술적 의미를 가진다.
그녀의 인스톨레이션 구조와 자신을 주체로한 오브제의 이미지를 동일시하여서 내적으로한 주체는 변형된 자신의 이미지를 형성한다.
이것은 그녀의 <Song-do Encounter> 이다.
<Song-do Encounter>에서 비재현적인 가족의 사진적 이미지는 상사적으로 실재를 재현한 가상적 이미지로서 의미가 존재한다.
건축적으로 구조화한 <With bachelor’s house>에서 전이된 또 다른 인스톨레이션이 <당신의 파빌리온>이다.
<당신의 파빌리온>은 한 벽에서 전이된 또 다른 벽을 생성하여서 외적 구조로서의 <No Signal>의 벽에서 분리한다.
그리고 그녀의 <No Signal>의 구조와 <당신의 파빌리온>의 형상이 공유한다.
이것은 투영된 구조이어서 감추어진 타자의 욕망으로한 오브제ɑ를 응시할 수 있다.
손몽주는 반복된 벽으로 생성된 공간을 만들어서 보이지않는 오브제ɑ를 응시하고자 보이는 오브제가 가지는 비물질적 실재의 현상에서 벗어난 또 다른 공간에서 응시로 존재하는 오브제ɑ의 자리를 정하여서 위치를 밝힌다.
글. 최철주(미술평론, 디자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