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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평론 : 홍상현 개인전 ‘吶[Null]; Cogito Lente'展 (20170812-20170824, 서진아트스페이스)

by 루이 최 2017. 8. 31.

 

‘吶[Null]; Cogito Lente'展 

 

 

 

 

 


홍상현은 기억을 사진화 하여서 대상을 吶한다.
그의 느린 사유(Cogito Lente)로한 사진은 소리질러 말이 나옴이 막히지만 말을 더듬고 있다.
하늘의 모양은 능선과 분리되어서 이루어진다.
시간에 감추어진 산은 일상의 언덕을 넘어서 멀어져간다.
그리고 시간의 계곡을 버리고 기억의 능선이 된다.
빛은 하늘을 간섭하여서 구름으로 산을 감춘다.
그것은 雪이 되어서 지울 수 없는 기억이 된다.

산으로한 공제선은 여러개의 산이 중첩되어서 생긴 그대로를 베낄 수 없지만
홍상현은 산의 형상을 감광막 위에 남긴다.
그리고 가려진 빛은 시간의 형상을 기억하려고 하나의 능선을 드려낸다.
하늘과 분리된 하나의 능선은 지난 시간의 여백이 되어서 가려진 기억을 밀어내어서 눌한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기억에 대한 마음이 행하는 이성적 작용으로한 고기토가 천천히 눌하여서 그의 사진이 찾아가는 대상이 된다.
그의 사진은 다시점에서 보이는 오브제이다. 이것은 응시의 주체가 기억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의 사유는 기억의 관찰자로서 주체이다. 이것은 사진 이미지로 보이는 응시로한 이미지이다. 그것은 빛을 응시하면서 기억의 구조를 변형시킨다.
하지만 그의 응시로한 이미지는 주체로써 한 시점에서 보이는 사진이지만 그 주체는 모든 기억의 사유로서 보인다.
그러나 그의 사진은 형상에서 감성으로한 표현을 강조하지만 회화가 이룬 묘사성을 넘어서지 못하고 풍경화의 농담을 따라한다.

그럼에도 그는 사진에 노출되어진 이미지를 기록하려고 하지 않고서 존재적 감성으로서 기억이 사진의 프로세스로 형식되어진 사진의 구조를 만들어간다.
그는 기억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표현하려고 한 것이다. 이것의 표현을 바르트는 표현할 수 없는 충동이라고 하였다.
기억은 마치 산처럼 잊처진 과거의 모습이다.
이것은 산들의 농담이 사실적이어도 시선은 산의 공제선 밖에 머물기 때문이다
하늘과 장벽과의 대비에서 벽의 치장이 돋보인다. 이것은 하늘에 마음 담지못하는 사진의 충동이다.

그는 정형화된 구도가 아닌 충동화된 구조로서 마음 베끼는 비예술의 경계에 선다.

홍상현은 느린 사유로한 언덕에서 장벽을 만난다.
장벽은 공간을 분리하여서 서로의 관계를 막아선다.
그러나 분리된 방벽 공간은 하늘을 공유하여서 전체의 공간이 된다.
이것은 하늘의 모양이 다르지만 그것을 기억 하여서 시간은 슬픔 형상을 공간에 담은 것이다.
그는 기억의 형상을 느린 사유로서 찾아서 시간에서 기억의 공간을 만든다.
기억의 형상을 선택한 공간은 하늘에 대하여 주체를 대신한다. 그리고 그의 주체에 종속되는 하늘은 기억에 속한 형상으로 진입한다. 이것이 느린 사유로한 주체의 하늘이다.
하늘의 주체는 사라짐 없이는 어디에서도 존재한다. 하늘은 홍상현의 사진을 선택하여서 장벽의 주체를 다른 하늘로 갈아 채운다.
그리고 시간의 보편성을 다른 기억의 시간으로 가져간다.

그러나 기억의 순간에서 허물어진 장벽을 멀리할수록 사유하는 것들이 밝혀진다.
따라서 사유의 주체는 기억의 이미지가 연쇄화에서 순간적으로 말하는 사진적 행위이다.

홍상현의 사진은 기억의 주체로서 하늘에 드러나지 않는 또 다른 공간에 존재하며 고기토 구조로서 기억의 주체와 말한다.
 

 

 

 

 글.  사진평론가 최철주 (문화평론가 & 문화디자인학박사)

 

 

 

 

홍상현_039_002,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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