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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47

디자인평론 : 문화평론가 & 미술평론가 최철주 문자의 이미지 디자인으로서 普遍妥當한 전시 시각 문화평론 문화평론 : 문화평론가 & 미술평론가 최철주 문자의 이미지 디자인으로서 普遍妥當한 전시 미술평론 普遍妥當한 전시 普遍妥當은 대상에 대하여 공통된 것을 편하게 대하는 것이다. 이것을 일상에서 선택하여서 김근숙은 크기를 정하고 의미를 만들어낸다. 그녀의 그림은 한 대상에 한정되지 않고서 놓인 전체의 조건에 맞춘다. 따라서 일상의 한 조각을 그려내어서 그것을 의미로한 공감을 드러낸다. 이렇게 일상의 풍경을 낯선 크기로한 그림을 만든다. 창밖으로 보이는 대상의 크기는 한정되어도 그녀의 시선에서 현실의 일부분이다. 그러나 배반적 현실은 동일한 크기에 있어서 작은 크기로서 추억을 가져간다. 따라서 감추어진 현실의 크기는 슬프지만 그녀의 작은 그림은 흥겹다. 보편적 그림은 보여주려는 시점의 반대편에서 본 것이다. 김.. 2017. 6. 18.
미술평론 : 문화평론가 & 사진평론가 최철주 필름사진 The Film Works- 홍상현 개인전 '少年의 房' 사진 문화평론 사진평론 : 문화평론가 & 사진평론가 최철주 필름사진 The Film Works- 홍상현 개인전 '少年의 房' 사진 문화평론 미술 & 문화평론 : The Film Works – 홍상현의 필름 사진전 '少年의 房' 사진평론 시간잉여공간으로서의 少年의 房 시간잉여공간은 선 공간과 현재와의 사이에서 이외의 공간을 말한다. 이것은 선 공간에 존재했던 시간성을 공간화하여서 시간의 흔적이 남겨진 비존재로서의 공간성을 보여준다. 이 공간은 이제(現)의 시간에 맞추어진 선 공간에서의 남겨진 인위적인 흔적이다. 이것은 빈공간으로 남겨져서 행위가 단절된 공간이다. 따라서 움직임이 없는 공간이다. 이것은 주체가 사라진 벽과 창의 무늬만을 밝힌다. 그리고 무늬가 의식하는 것을 볼 수 없다. 즉 시간은 잉여공간을 볼 수 있지만.. 2017. 5. 19.
미술평론 : 문화평론가 & 공예평론가 최철주 아르카익적 섬유미술 - 김언배 개인전 - 공예 문화평론 문화평론 : 미술평론가 & 공예평론가 최철주 아르카익적 섬유미술 (김언배 개인전) 미술 공예평론 김언배(섬유작가) : 울산대 교수 아르카익적 섬유미술 김언배 개인전 김언배의 아르카익적 섬유는 낡은 방식이다. 그러나 아르카익은 이집트에게 감성을 주어서 조형성을 따르게 하였다. 그리고 아르카익은 그리스에게 스스로가 원하는 조형에 미적인 가치를 표현하게 한다. 섬유의 조형성은 표현의 방법에게 의미를 내어주었다. 그의 섬유는 자유로운 아르카익에 머물고 있다. 그는 그리스 조각에서 미소 띤 표정을 보고서 섬유의 조형성을 분별하게 되었다. 아르카익의 미소에서 시작된 반구형은 달팽이의 면과 선으로한 리듬이 되어서 그의 섬유를 만든다. 그는 섬유의 추상적 표현과 그만의 독특한 염색을 통하여 건물을 가리는 행위를 하였다.. 2017. 5.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