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시

미술평론 : 문화평론가 & 공예평론가 최철주 아르카익적 섬유미술 - 김언배 개인전 - 공예 문화평론

by 루이 최 2017. 5. 13.

 

문화평론 : 미술평론가 & 공예평론가 최철주 아르카익적 섬유미술 (김언배 개인전) 미술 공예평론

 

 

 

 

 

 

                                                                                                                                   김언배(섬유작가) : 울산대 교수 

 

 

 

 

 

아르카익적 섬유미술 김언배 개인전

김언배의 아르카익적 섬유는 낡은 방식이다.
그러나 아르카익은 이집트에게 감성을 주어서 조형성을 따르게 하였다.

그리고 아르카익은 그리스에게 스스로가 원하는 조형에 미적인 가치를 표현하게 한다.

섬유의 조형성은 표현의 방법에게 의미를 내어주었다.
그의 섬유는 자유로운 아르카익에 머물고 있다.
그는 그리스 조각에서 미소 띤 표정을 보고서 섬유의 조형성을 분별하게 되었다.
아르카익의 미소에서 시작된 반구형은 달팽이의 면과 선으로한 리듬이 되어서 그의 섬유를 만든다.

그는 섬유의 추상적 표현과 그만의 독특한 염색을 통하여 건물을 가리는 행위를 하였다.

그리고 크리스토의 '떠있는 부두'에서 천으로 감싸여진 호수를 보았다.
호수가 의미를 잃어버린 것처럼 그는 행위로 얽매여진 음영적 존재를 잊어버렸다.
그의 추상성은 한정된 형태에 근거한다. 섬유는 한정된 형태가 없는 경우에 고정되지 않는다. 형태에서의 기의는 유사적인 다른 의미로서 형상에 은폐되어 있다.
따라서 그는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음영적 형상의 존재를 찾고자 한다. 그것은 섬유로서의 가락국기이다.

가락국기는 가락국이었던 금관주의 역사서이다.

이것은 수로왕과 허황후와의 혼인설화 및 고려왕조까지의 김해 지방의 연혁이다.
신라에 합병된 이후 가야의 지위가 낮아지고서 고려에서 편찬된 신화이다. 따라서 이것은 가야 때에 맞추어 인물을 돋보여준다.
그러나 김언배는 가야의 포(袍)와 저고리 그리고 사라진 민화에서 새로운 섬유의 매무새를 잡아주려고 한다.
그의 섬유는 민화에서 예(禮)와 의(義) 두 글자로한 효제도이다.
이것은 글자에 이야기를 맞춘 구조로써 ‘의’자는 도원지의(桃園之義)를 상징하는 복숭아나무와 선비를 상징하는 봉황을 주로 그리지만 김언배는 ‘의’자에 예언하는 개구리를 그려넣어서 신가락국기를 보여준다.
그것은 캘리그라피에 문자가 뜻하는 내용을 옻칠한 섬유이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섬유에서 천을 떼어서 새로운 가락국기로 미적(美績)하고 떼어낸 흔적을 바꾸어서 조형성을 드러낸다.
그는 모사적 민화를 옻칠하여서 섬유가 정한 비율성에 조형성을 드러나지 않게 숨긴다.
그리고 그는 섬유적 행위로 잊어버린 음영적 형상을 천에 문자로 적어서 ‘바람의 말’ 처럼 얽매이지않는 섬유의 자리로 바뀐 티베트를 드러낸다.
이것은 천으로 가리는 행위에서 문자를 넣어서 섬유적 행위의 완결지로서 티베트의 섬유와 그가 만난 것이다.

김언배의 섬유는 티베트의 공간에서 드러나지 않는 음영적 형태의 표현이다.
섬유의 양식에는 실과 천이라는 다른 평면성이 있다. 이 두 가지에는 조형성을 드러내는 또 다른 매개항이 존재한다.
그는 티베트적인 형상을 드러내기 위해서 공간과 섬유 사이에 조형성을 끼워준다. 이것은 공간에서 음영적 존재를 분리하여서 조형적 염색과 섬유를 서로 같게 나타내어서 꿰는 것이다.
이렇게 음영적 존재에서 얻어지는 표상을 통하여 조형성의 염색을 대상으로 인지하고 음영적 지각으로서 대상의 존재를 섬유로 형상한다. 그는 형성된 섬유에서 아름다운 염색을 낳고 그것을 찾아내어서 실재화 한다.

그의 섬유는 낯이 익은 형태의 섬유적 행위를 반복하여서 그가 선택한 염료로 형상을 만들고 실재화 한다.
그리고 그의 인식에서 분리된 음영적 형상이 기의 적으로 섬유에 결합한다. 이것은 음영적 실재로서 어둡고 분명하지 않은 섬유에서 바르지 않지만 섬유를 닮은 형상을 찾아내어서 공간과 대응관계가 있는 섬유의 형상을 갖추는 것이다.

그는 섬유에서 선으로 집적된 구성적 이미지를 택하여서 이목이 미치지 못하는 촘촘한 대상의 거리를 소거한다.
그리고 사라진 하나의 광원적 시점으로 형성된 공간성을 조형성으로 전이한다.
이것은 형태를 단순화한 섬유에서 구성과 추상과의 간극에 그의 자리를 만들고 반복적으로 지나간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가 만난 소재로서의 달팽이는 섬유로 형성된 이미지에서 분리되어 또 다른 추상적 섬유로서 조형화 한다.
그는 섬유의 미묘한 추상성을 명확히 하려고 자연속에 이야기로서의 섬유적 모사와 달팽이 사이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낸다.
이것은 그의 섬유를 가락국기에 넣어서 조형성을 달팽이와 닮은 섬유로 치환함으로서 신가락국기를 만든 것이다.

마티스의 달팽이는 추상적이다. 그는 달팽이를 ‘현실에 뿌리박은 추상적 패널’이라고 명제하였다. 그는 패널이 표시의 형식과 내용이지만 시간이 지나서 입력의 조건들이 정해지는 화면이 될 것을 추상하고서 달팽이를 추상적 패널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색종이로 오려붙여서 달팽이의 연속성을 중지함으로서 반복성을 상징화 한다.

그러나 김언배의 달팽이는 반복적으로 행진하여서 색채의 모순된 대비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의 섬유에서 주정성을 남기고서 보이는 거리감을 소거한다.

김언배의 섬유는 그가 보고 경험한 공간에서 주정성을 떼어내어 미적(美績) 한다.

그가 미적한 섬유는 언어구조와 같이 은유적이다.
이것은 섬유가 물질의 가변적 상태로서 실, 천과 섬유라는 세 가지의 다른 형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섬유는 한정된 형태에 고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의 조형성은 은유된 섬유에서 환유되어진 천에 은폐되어 있다.

이것은 보임에 대응하지않고 밝기가 대비되지않는 형태이다. 이렇게 그는 달팽이의 우는 소리를 내려고 말을 더듬고 있다.
그는 섬유의 실재적 표상을 민화의 이미지로 옻칠하여서 섬유 공간에 등장시켜서 섬유가 모사된 것을 강조한다.
이것은 가락국기의 표시를 민화로 담은 기표적 이미지이다.

즉 실재의 기의로 접근한 신가락국기의 조형성이다. 이것은 섬유에서의 형식과 내용을 거두어들이고 조형성을 뿜어낸다.

섬유의 조형성은 이론적 근거의 일반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섬유가 예술로서 천의 형성이 가능한 반면에 섬유는 정량화된 형태로 이미지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이것의 회화적 인식은 천의 일상적 쓰임에서 분리된 실체적 존재를 재현함으로써 가능하지만 일반적 시각으로는 가변성을 인식할 수 없다.

그러나 김언배는 자연이 지나간 기록에서 섬유의 자리를 만들어서 천의 형태를 가변하고 음영적 형상으로 전이한 섬유의 존재를 확장한다.
그는 섬유의 본을 뜨는 음영적 외면에서 머물다가 섬유가 정한 천과의 교차하는 관계에 끼어들었다.
그리고 그가 자리를 차지함으로서 실체적 존재로서 달라진 천은 섬유의 자리를 넓힌다.

 

글. 한새뮤지엄 큐레이터. 최철주 (문화평론가 & 문화디자인학박사)